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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남다희 2월 현장실습 후기
  • 등록일  :  2020.03.02 조회수  :  2,123 첨부파일  : 
  • 이번 겨울 현장실습은 저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실제 범죄 피해자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소장을 작성하고 같이 법원에 가서 접수하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소중하고 값졌습니다. 지난 여름 현장실습 때 소장을 작성해본 경험이 있지만 다 잊어버린 탓에 처음부터 시작했어야 해서 아리송하고 헤매기도 했지만 처장님의 도움을 받아 팀원과 함께 무사히 완성해낼 수 있었습니다. 소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분의 요구가 있었고 그 요구를 다 들어드릴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난감함도 느끼고 답답함도 느꼈습니다. 우리 팀이 반영해줄 수 없는 내용을 자꾸 얘기하고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시는 피해자분께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때 저의 꿈인 검사를 떠올리며 검사들은 이런 상황이 수도 없이 많을텐데 이럴 때마다 어떻게 대처할까 궁금했고 정말 자신만의 소신 없이는 해내기 힘든 직업이 검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또한 범죄자에게는 냉철하게, 피해자에게는 따뜻한 마음으로 수사와 공판에 임해야 하는 게 검사라고 생각했었지만 때로는 피해자에게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할 줄도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처장님께서 시간을 내셔서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범죄피해자보호법 등을 강의해주셨고 그 중, ´범죄피해자학´에 대해 관심이 생겨 혼자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범죄피해자학의 초기 연구는 가해자가 중심이었는데 아무리 가해자의 성향, 상황 등을 알아도 범죄가 해결되지 않다보니 피해자의 시각에서 어떻게 범죄 피해가 발생하는지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합니다. 성범죄를 예로 들어보자면 성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1960년대에 여성들이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어서, 명확하게 "NO"라고 얘기하지 않아서 등등의 원인론이 등장했고 그 당시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질타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이 원인론은 질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원인론을 옹호한다는 것은 곧 남성들 스스로 잠재적 범죄자임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은 여성을 보면 이성으로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채 강간을 한다는 것이니까요. 그게 짐승이 아니면 뭡니까. 반대로, 남성들이 노출을 했다고 해서 여성들이 강간하고 스토킹하고 살인하는 사례가 몇이나 됩니까? 어떤 옷을 입든 그것은 여성들 개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NO"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곧 "YES"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심한 보복을 받을까 두려워 거절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성범죄를 여성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이 원인론은 이제 더이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으로써의 힘은 잃은지 오래인 것 같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의 삶을 힘들게 하는 범죄들을 없애기 위해 어떠한 시각으로든 연구하는 것은 좋지만 화살이 피해자를 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피해자 다움"이라는 것도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희정 지사 강간 사건에서, 피해자가 증거를 수집한 것을 보고 사람들은 성범죄 피해자 맞냐, 피해자같지 않다며 비난했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날 것이고 그에 대비해 증거를 모은 것일 뿐인데 피해자 답지 않다며 그렇기에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남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뿐더러 피해자의 모습을 규정해 그 모습에 들어맞으면 피해자이고 아니면 피해자가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2차 가해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하루빨리 이러한 인식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성범죄, 데이트 폭력, 약물 강간, 불법촬영 등에 관심을 가지고 다같이 힘을 모아 싸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모두´의 범주에는 남성들도 포함됩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나몰라라 하는 태도는 더이상 보이지 않길 바랍니다. 사람이라면 같이 분에 못이겨 싸워야 맞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할수록 화나고 언제쯤 개선될까 답답한 문제이지만 처장님의 강의를 듣고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회를 갖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미래의 저는 성범죄 피해자들을 돕는 검사가 되고 싶습니다.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지만 강의를 듣고 혼자 이런 생각도 해보면서 더욱 확고해졌고 제 나름대로의 신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동기부여할 수 있게 해주신 처장님께 감사드립니다.